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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s/Book

박사가 사랑한 수식 - 오가와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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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 나를 엄마 뱃속에서 받아내신 분이 외할머니고, 과자 사달라며 엄마를 조를 때마다 옆에서 따끔히 혼내신분도 외할머니라는데 너무 어릴 적 얘기라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조카들이 올 때마다 군것질거리를 사다 주시는 아빠와 용돈을 챙겨주시는 엄마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조카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갑자기 왠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들에게서 친할아버지와 친손자 그 이상의 감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기에 문득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교통사고로 기억이 80분간만 지속되는 천재 수학박사와 파출부로 들어간 주인공, 그리고 그녀의 아들 루트가 서로를 걱정해주고 보살펴주며 생활하는 모습을 그렸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박사와 루트간에 흐르는 할아버지와 손자같은 모습과, 미혼모로 루트를 낳아 다른 사람의 사랑을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주인공이 박사의 루트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보며 느끼는 작은 행복, 80분마다 전혀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는 박사가 당황하지 않도록 말 하나하나 배려하는 주인공과 루트의 모습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박사의 기억력이 점점 흐려지고 요양원으로 자리를 옮겨서까지 박사에 대한 루트의 사랑은 지속된다.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pp. 41

"그래. 하염없이 걸어도 소수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지. 사방이 온통 모래의 바다야. 태양은 쨍쨍 내려쬐고, 목은 바짝 마르고, 눈은 가물거리고, 정신은 몽롱하고. 앗, 소수다! 하고 뛰어가 보면, 그냥 신기루일 뿐.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는 것은 뜨거운 모래 바람뿐.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지. 지평선 너머에 맑은 물이 출렁이는 소수란 이름의 오아시스가 보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말이야." PP. 92

"우리 축하 파티 해요."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열심히 노력해서 1등한 사람을 모두 함께 축복하면, 기쁨이 배가 되잖아요."
"난 별로 기쁘지 않은데. 나는 그저 신의 수첩을 슬쩍 들여다보고 그걸 베꼈을 뿐......" PP. 218